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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직 이야기 - 2

- 임소장1 -

2018년부터 나의 직함은 데이터사이언티스트가 되었다.

사내 데이터사이언티스트 공모에 지원했고, 덜컥 서류-면접을 통해 합격했다.

(지원 자격요건은 ‘데이터사이언스와 머신러닝에 호기심과 열정이 큰 직원’ 이었다.)

정부출연연구소나 공기업의 연구소의 운영 방식은 국회나 공무원 조직의 그것과 비슷하다.

조직의 장을 배치할 때 과거 이력이나 전문성 보다는, 그 사람의 지위나 영향력을 우선 고려한다.

장은 1, 2년 근무 후 타 부서 또는 다른 보직으로 이동해야 한다.

따라서 관리자들이 전문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어짜피 1, 2년 후에는 이동하기 때문에 조직 운영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도 약하다.

조직원 구성도 마찬가지다. 외부 전문가 채용에 인색한 편이다. 주로 내부 인원 차출, 재배치로 팀을 꾸린다.

유행에 따라 연구개발 테마도 자주 바뀐다. 선진국의 기술 트렌드를 쫒기 바쁘다.

미국, 독일, 일본에서 관련 연구를 시작했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2030, 2050을 타겟으로 하는 중장기 로드맵은 있지만 매번 유행만 좆다보니 너덜너덜해졌다.

잦은 정책 변화 때문에 연구원들은 매년 책상 배치를 바꾸고 사무실을 이리저리 옮기는 조직개편 행사를 경험한다.

사람은 그대로다. 사무실 명패와 책상 배치만 달라질 뿐.

어쨌는 ‘한국형’ AI, ‘한국형’ 빅데이터 기술을 선도한다는 미명 아래,

나를 포함한 사내 공모 인력 다섯명은 빅데이터 전문가가 되었다.

이번에는 다를거라고 한다. 소장될분이 외부 전문가로 특별채용했고,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실무자들도 전공자로 영입될 계획이다.

우리는 1월 1일 부로 서울 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로 발령을 받았다.

연구소 사무실에는 30개 책상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앞으로 입사할 신입사원들 자리를 포함한 것이다.

책상만 제공 받았을 뿐, 관리자도 없고 행정 지원도 없다. 우리가 다 알아서 해야한다.

회사의 지원은 여기까지다. 정수기부터 인터넷 연결까지 알아서 처리해야 했다.

사무실에는 사외 전문가로 영입된 박사 인력 두명이 한달 전부터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들과 인사를 나눴지만 서로간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전문가 두분을 간단히 소개 하자면,

  • 오박사(55세) : 도쿄대 경영학 박사. 나이가 많음…. 과거 경력이 빅데이터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음. 15개 이상의 기업에서 근무. 회사별 근속연수 평균 1.5년.

  • 박박사(39세) : 통계학 박사. 우리 중 유일하게 학교에서 데이터 관련 기술을 전공한 사람.

첫날인데 조직의 리더인 연구소장이 보이지 않는다.

소장은 MIT에서 AI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글로벌 대기업 S -> L -> S를 거쳐

우리회사에 스카웃된 데이터사이언스 최고 전문가라고 했다.

공공기관은 외부 인재 영입에 상당히 보수적이다.

위로 갈수록 보직자리가 줄어드는데 능력있는 사람이 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외부에서 인재를 채용하고 보직까지 부여했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였다.

당연히 전사 직원들의 관심이 몰렸다.

소장이 없는 동안 우리끼리 알아서 사무환경을 구축하고 연구소 운영계획을 세웠다.

인터넷 라인과 PC를 구매해서 사내 시스템에 연결했고, 세부조직을 어떻게 구성할지 의논했다.

잘나간다는 G사, N사, 그리고 ‘카’사 연구소를 방문해서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지 벤치마킹했다.

소장은 2주가 지나도 출근하지 않는다.

채용을 알선한 헤드헌터를 통해 한달 뒤에 입사하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의 입사 날이 가까워짐에 따라 궁금증은 더 커져간다.

식사 시간이나 티타임 대화의 단골 주제는 소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MIT 박사면 우리가 일하는 모습에 답답해하지 않을까요? 초반부터 찍히면 안되는데…’

‘신임소장 이름이 임xx 래요.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인터넷 검색하면 정보가 하나도 안나와요.’

테이블 끝에 앉아있던 구차장이 한마디 꺼낸다.

‘내가 본사 담당자 한테 들은게 있는데…

소장, 신혼여행 가야한다고 입사 한달 연기해달라고 했대요. 안그러면 입사 안하겠다고…’

평범한 성격은 아닌 것 같다.